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(문단 편집) == 범인 [[이춘재]] == * [[이춘재]] 항목에도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조 요망. ##아래 문단들 전체를 [[이춘재]] 항목으로 옮기거나 병합하는 게 나을 듯하다. >'''[[내로남불|할머니와 유치원생까지 강간, 살해하는 자라. 아무리 살인에 미친 사람이지만 저 같은 살인마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아니더라구요.]] [[예언|그 범인이 안 잡히는 건 아마 그가 사형수가 아닌 중형을 받아 교도소에 숨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.]]''' >---- >연쇄 살인범 [[유영철]]의 화성 연쇄살인범에 대한 평가[[http://m.monthly.chosun.com/client/news/viw.asp?nNewsNumb=200504100079#_enliple|#]] 처음에는 경찰에서 공식적으로 신상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이미 [[청주 처제 살인사건|다른 살인사건]]의 범죄자로서 그 당시 신상정보가 이미 공개된 상태였다.[* 당시만 해도 뉴스기사 등에서는 이름이나 주소 등은 한문으로 적었던지라 [[https://news.v.daum.net/v/19940117183200479|당시 기사]]에도 한문으로 이춘재의 이름이 적혀 있다.] 위의 정보는 처음으로 이춘재의 얼굴을 공개한 [[MBC]] [[실화탐사대]]에서 나온 고등학교 졸업사진이다. [[그것이 알고싶다]] '화성 연쇄살인 사건 2부' 예고편에 군복을 입은 사진이 [[https://youtu.be/xL1EB8vAPH0|공개]]되었다. 이춘재의 사건 당시 거주지는 [[경기도]]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(현 [[화성시]] 진안동)로 직장 생활과 결혼도 화성에서 했으며 주소를 몇 차례 옮긴 적은 있으나 모두 당시 화성군 내였고 [[1993년]] 4월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계속 화성에서 살았다고 한다. 당시 이춘재가 다니던 공장은 집에서 5km 거리에 있었으며[*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에 거주했던 학생들은 걸어서 1시간을 통학할 정도였으니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이춘재 입장에서 5km내 도보로 배회하면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큰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.] 단순 공장 업무를 했다고 한다. 그리고 확인 결과 1차, 2차, 3차, 6차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모두 당시 이춘재의 통근길로 추정되는 경로와 일치한다고 한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57&aid=0001383550|#]] 이춘재의 DNA가 확인된 5차, 7차, 9차 범행 장소와도 멀지 않으며 특히 9차 장소는 당시 이춘재의 집에서 불과 2km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anking/read.nhn?mid=etc&sid1=111&rankingType=popular_day&oid=437&aid=0000219998&date=20190919&type=2&rankingSeq=10&rankingSectionId=102|#]] [[청주 처제 살인사건]]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이춘재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한번 터지면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하며 아내를 하혈할 정도로 폭행한 것은 물론 2살배기 아들까지 멍이 들 정도로 때렸다고 한다. 또한 심각한 [[성도착증]]이 있었고 아내를 [[강간]]한 적도 있었다고 아내가 경찰에게 울면서 호소했다고 한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5&aid=0001241395|#]] 반면 친가족들에게는 잘 해준 것으로 보이며 과거 동네 주민들의 평판도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. 사실 악질범죄자라고 해도 자기 가족이나 친구, 이웃에게는 친절하거나 성격이 좋은 인간인 사례는 특이한 일이 아니며 [[사이코패스]] 연쇄살인범들도 각자의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,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한다거나 의외로 소탈한 면모를 보인다거나 하는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. 미국에서 42년 만에 경찰에 붙잡힌 ‘[[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|골든스테이트 킬러]]'나 30년 만에 붙잡힌 '[[데니스 레이더|B.T.K. 킬러]]' 역시 가정과 이웃에게는 무척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며 직업도 각각 경찰과 공무원이었다. 특히 'B.T.K. 킬러'의 경우 체포 당시 한 교회의 목사로 활동 중이었다. 중국판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린 [[바이인 연쇄살인 사건]]의 진범 [[가오청융]]도 부모가 죽을 때까지 정성을 다해 효도했고 아들 둘을 명문대학에 보낼 만큼 모범적인 가장이었기에 범인으로 밝혀지기 이전까지는 마을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다. [[악의 평범성]]이 보여주는 사례다. 동생은 형이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포악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다고 밝혔으며[*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55&aid=0000760070|인터뷰 기사]] 이게 화성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을 말하는 건지, 아니면 처제 살인사건으로 체포됐을 당시 심정을 말하는 것인지는 불명이다.] 친어머니 역시 처제 살인사건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큰 충격을 받고 인터뷰 도중에 가슴을 계속 치며 흐느끼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23&aid=0003475161|#]][* 이춘재의 어머니는 사건 전에 입은 골절상으로 입원 중이었는데 이후 언론을 피해 21일 병원을 옮겼다. 경찰은 모친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인 있는 데다 주변 사람들에게 협박성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까지 들어와 신변보호 후 상담까지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16&aid=0001582049|#]]] 이춘재 부모형제가 거주했던 [[진안동]] 주민들도 부모형제들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주민들 대부분이 믿기지 않아했다고 한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5&aid=0001241714|#]] 수감된 이후 역시 20년간 단 한 건의 문제행동도 보이지 않아 1급 모범수로 분류되었으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교도소 관계자들이 "조용하고 말없는 대표적인 모범수였다."며 놀라워했다고 한다. 이어 "무기징역을 선고받지 않았더라면 이미 가석방이 됐을 것"이라고 전했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82&aid=0000942319|#1]], [[http://naver.me/5fS5Q4RR|#2]],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1&aid=0011091264|#3]] 2009년과 2010년에는 교도관을 보조해 다른 수형자들을 관리하는 반장직까지 맡았을 정도였다고. 다만 오히려 사회보다 교도소에 더 잘 적응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. 철저히 동성끼리만 생활하니 연쇄살인에서 드러나는 이성에 대한 가학성이 발현될 리 없고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익숙한 성격이기 때문에 위계가 확실한 교도소에서 모범수가 되었으리란 분석이다. 마지막 사건인 1991년 4월 3일부터 처제를 살인한 1994년 1월 13일 사이인 약 3년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이유는 1991년 7월경에 이춘재가 [[결혼]]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sec&oid=001&aid=0011092985&isYeonhapFlash=Y&rc=N|#]] JTBC가 이춘재의 당시 인척을 만나 취재한 결과를 통해서도 이춘재가 1991년 7월에 화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게 확인되었다. 이후 1992년에 아들을 출산했고 1993년 청주로 이사했으며 1994년 1월에 처제를 강간하고 살해했다. [[http://news.jtbc.joins.com/article/article.aspx?news_id=NB11882637|#]] 아내와 아직 갓난아기였던 아들을 상습폭행한 것도 살인을 일시적으로 멈췄으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누르지 못해 가족에게 그 화를 풀었으며 결국 처제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. 교도소 측은 용의자 특정 이후 혼란을 우려해 이춘재를 독방으로 옮겼으나 이춘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sec&oid=001&aid=0011092435&isYeonhapFlash=Y&rc=N|#]] 이춘재는 [[2006년]]부터 면회가 가능해졌는데 매년 2~3차례 남동생과 어머니가 자주 면회를 오거나 영치금을 넣어줬다고 한다. 또 이춘재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넓은 농지들이 화성시 재개발로 인해 땅값이 엄청 올라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. 지금까지 판 것들을 모두 합치면 현재 가치로 최소 100억 원 정도 됐을 거라고. [[https://www.edaily.co.kr/news/read?newsId=02728966622623072&mediaCodeNo=257|#]] ##위 문단들 전체를 [[이춘재]] 항목으로 옮기거나 병합하는 게 나을 듯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